면앙정

2005. 7. 9. 22:37나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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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면앙정 1

   조선 중기의 문신이었던 송순(1493∼1582)이 고향 마을인 담양군 봉산면 제월리 뒷산 제월봉 언덕 위에 지은 정자이다. 면앙정은 정자의 이름이면서 송순의 호이기도 하다. 면앙이란 땅을 내려다보고 하늘을 쳐다본다는 뜻으로, 아무런 사심이나 꾸밈이 없는 너르고 당당한 경지를 바라는 송순의 마음이 여기에 읽힌다. 면앙정으로 가려면 가파른 계단을 올라야 한다. 아이들은 이 계단에 오르고 나니 지치는지 정자에 누워 버렸다. 누워 있어도 어울리는 곳이다. 뿐만 이겠는가 어떻게 하고 있어도 사람이 곧 자연이 되어 버리는 곳이었다.

   송순이 처음 이 정자를 지은 것은 나이 41세 되던 조선 중종28년(1533)이었다. 젊어서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나아갔던 그는 당시 조정에서 김안로 일파가 실각하자 다시 조정에 나아가, 몇 차례의 부침을 겪으면서도 77세의 의정부 우참찬에 이르기까지 관직 생활을 했다. 마침내 관직을 은퇴한 그는 91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온전히 면앙정에 머물며 유유자적하는 가운데 많은 가사를 남겼다. 원래 이 면앙정터에는 곽씨 성을 가진 사람이 살았다. 어느 날 금어(金魚)와 옥대(玉帶)를 두른 선비들이 이곳에 모여 오락가락하는 꿈을 꾼 그는 자기 아들이 벼슬을 할 것이라 여겨 공부를 시켰지만 뜻대로 되지도 않고 집안마저 가난해졌다. 곽씨는 이곳의 나무를 다 베어 버리고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고, 송순이 그 터를 사 놓았다가 나중에 정자를 지었던 것이다. 뒷날 이곳이 소위 면앙정가단을 이루어 허다한 학자, 가객, 시인들의 창작의 산실이자 휴식처가 된 것을 보면, 곽씨가 해몽은 틀리게 했지만 꿈은 제대로 꾸었던가 보다.

   정자 앞에는 가사문학 중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는 [면앙정기] 한 구절을 새긴 비가 서 있다. 송순의 [면앙정가]는 정극인의 [상춘곡]과 더불어 호남 가사문학의 원류가 될뿐더러 내용, 형식, 가풍 등에서 정철의 [성산별곡]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정자 앞과 뒤에 선 큰 참나무 두 그루는 송순이 정자를 지은 후 기념으로 심은 것이라 전해지며, 제월봉 정상 쪽으로 100m쯤 간 곳에는 송순의 무덤이 있다. 원래의 정자는 선조 30년(1597)에 임진왜란으로 부서졌고1654년에 후손들이 다시 지은 후 몇 차례 보수하면서 오늘에 이른다. 건물 자체는 간소하지만 역사적 의의가 크기에 1972년에 전라남도 기념물 제6호로 지정되었다.

 "10년을 경영하여 초가삼간 지어 내니 나 한 칸, 달 한 칸에 청풍 한칸 맡겨두고 강산은 들일 데 없으니 둘러 두고 보리라."

 송순이 만년에 면앙정을 두고 읊었다고 전해지는 이 시에는 우리 민족의 자연주의적 정원관이 잘 나타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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