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3. 22. 09:56ㆍ♡먹방
고개미젓 한 단지는 있어야 1년 나지...
100년 전쯤, 부안에는 신소리 잘하고 해학이 넘치는 조판구(趙判九)라는 사람이 살았다.
조실부모한 그는 결혼도 못한 채, 70여세 때까지 이집저집을 전전하며 머슴살이를 하였는데, 타고난 건강과 낙천적인 성격, 구수한 해학과 신소리로 사람들을 웃기고, 당황하게 하고, 말문이 막히게 하고, 때로는 뉘우치게 하면서 거침없이 살았다고 한다. 또 머슴에 어울리지 않는 짜가사리수염에 기운도 세고, 두주불사하는 호인이어서 어른 아이, 남녀를 막론하고 이물 없게 “조팡구” “조팡구”하며 그를 따랐다고 한다.
그런 조팡구가 하루는 주인으로부터 삼베잠벵이 하나를 얻어 입었다.
머슴에게 좋은 옷을 지어 줄 리 있겠는가? 어찌나 허름하고 얼멍얼멍한 싸구려인지 이걸 입고 마당에 앉아서 보리타작을 하는데, 속이 훤히 비쳐서 귀중한 것이 덜렁덜렁 민망하기 그지없다.
심사가 뒤틀린 조팡구, 아무도 부르는 사람이 없는데도 갈퀴를 탁 놓으며“어이! 나감세”하면서 나가더니 한참만에 혼자 두런두런 하면서 들어온다. 주인이“자네 어디 갔다 오는가?”하고 물으니
“별 미친놈들, 새포 안성리(계화도 간척공사 이전에는 바닷가 마을이었다.)놈들이 내 이 삼베잠벵이를 팔으라고 안 왔소.”
“그 잠벵이를 뭣 할라고 그런당가?”
“아 고개미 잡는 그물 하였으면 참 좋겠다고 안 그러요.”
주인이 자세히 보니 아닌 게 아니라 속이 민망하게 다 보인다. 주인은 조팡구의 심통을 잘 아는지라 얼른 도톰한 베잠벵이를 마련해 주었다.
고개미는 몸 길이 1.5~2cm 정도, 굵기는 이쑤시개 굵기보다도 가는 아주 작은 새끼 새우를 말한다. 이렇게 작다보니 모기장이 없던 그 옛날에는 채나 대나무로 촘촘하게 엮어 만든 소쿠리를 이용해 잡아야만 했다. 그러나 작다고 맛마저 없으랴.
고개미는 더위가 한풀 꺾이는 8월 중순경이면 까치당, 모항, 마포, 대항리, 장신포, 계화도 등지의 갯벌로 몰려들어 여름내 더위에 지친 우리네 미각을 자극해 준다. 이럴 때면 아무리 들일이 바빠도 이렇게 몰려 온 고개미떼를 놓칠 수는 없는 일, 대나무와 모기장을 이용해 만든 어구를 밀고 다니며 물 위에 떠다니는 고개미떼를 건져 올려 회로 먹기도 하고, 젓갈을 담가 두고두고 먹는다.
붉으스름하게 익을수록 형체는 녹아버리지만 맛과 향은 더 깊어지는 게 콩나물국, 김치찌개, 호박나물에 넣어 조리하면 맛이 그만이다. 그 유명한 전주 콩나물국밥도 이 고개미젓으로 맛을 낸다. 특히 돼지고기 먹을 때 그 진가는 유감없이 발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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