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3. 27. 22:29ㆍLANDSCAPE
강실이는 한 해 사이에 몰라보게 달라져 있었다. 둥글고 도톰하던 두 볼이 갸름하게 흘러내리고, 눈매의 그늘은 잠잠하면서도 깊어진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강모는 가슴이 사무쳤다. 한두 번 마주쳐도 강실이는 강모를 바로 안 보고 비스듬히 얼굴을 돌리곤 했다. 그런데 왜 지난 가을, 대실의 신방에서 꿈에 본 강실이는 연두 저고리를 입고 있었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 연두의 빛깔이 지금도 선연히 가슴에 번지고 있는 것을 강모는 느낀다.
"... 오라버니."
강실이는 부엌 바라지 앞에 선 채로 그렇게 말했다. 그 목소리에 김이 서려 있었다. 그네가 들고 있는 함지에서 김이 오르고 있는 때문일까. 그네의 얼굴도 김에 부옇게 어리어 잘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강모는 사립문간에 붙박인 듯 서서 차마 발을 옮기지 못하고 그런 강실이를 바라보았다. 그의 가슴에도 자욱한 김이 서린다. 그것이 속에서 식으며 물방울로 맺힌다. 그대로 눈물이 배어 나올 것만 같다.
"추운데... 들어가세요."
그래도 강모는 그 자리에 서 있기만 한다. 가슴에 서렸던 물방울이 차갑게 줄을 그으며 복판으로 미끄러진다.
---'혼불' (최명희)
아궁이 앞에 넋 나간 사람마냥 멍하니 앉아 시름시름 타오르는 저녁 밥솥 불땀을 부지깽이로 일우며, 오류골댁은 정지문 바깥에서 무슨 기척이 들리는 것 같아 흠칫 놀란다.
흐드득.
누가 왔는가.
등걸처럼 쭈그리고 앉은 몸을 일으켜 한 손으로 부엌 바라지를 잡고 마당을 내다본 오류골댁 눈길이 사립 간에 머물다가 맥없이 걷힌다.
투두두둑.
이번에는 뒤꼍에서 비 듣는 소리가 난다.
저도 모르게 그쪽으로 고개를 돌린 오류골댁 눈에 비긋이 열린 뒤꼍바라지 너머로 두꺼운 잎사귀 무성한 감나무 둥치가 들어온다.
---'혼불' (최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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